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언싱커블 작전 (문단 편집) == 소련의 간파와 대응 == >괴벨스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서방 국가들이 소련에 대항하도록 선동하고, 그들이 유럽을 구하려면 지금이 행동을 취할 최적기임을 보여주려 했다. 괴벨스는 히틀러 생일 전날인 4월 19일 그가 전통적으로 행해 오던 라디오 연설에서, 대륙으로 밀려들어 오는 '볼셰비즘의 홍수'를 지극히 암담한 전망으로 표현하고, 히틀러를 문명 세계의 수호자로 칭송했다. >>아돌프 히틀러가 없었다면 독일은 핀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의 정부들과 유사한 정부에 의해 통치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오래전에 볼셰비즘에 희생되었을 것이다. 레닌은 언젠가 붉은 세계혁명의 길은 폴란드와 독일을 가로지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국과 미국이 아무리 미화하더라도 폴란드는 크렘린의 수중에 떨어졌다. 독일이 폴란드같이 되었거나 앞으로 그렇게 된다면, 우리 대륙의 나머지 지역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 >>1945년 4월 19일 괴벨스의 라디오 연설 >실제로 모스크바에서는 서양 열강들이 마지막 순간에 나치 독일과 개별적으로 휴전을 체결하거나, 심지어 반소동맹을 체결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사태를 시사하는 수많은 징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크렘린에서는 힘러와 베르나도테의 접촉, 이탈리아 전선에서 조속한 휴전을 위해 친위대 중장 카를 볼프와 미국 정보부장 앨런 덜레스 사이에 이루어진 협상(이를 통해 1945년 5월 2일 이탈리아 전선에서 휴전이 이루어졌다), 리벤트로프의 여러 시도를 인지하고 있었다. 소련의 코네프 원수는 회고록에서 "우리가 이와 관련한 수많은 정보들을 입수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갖가지 소문들이 우리 머리 속을 헤집고 다니는 상황에서 그 가능성들을 무시해버릴 권리는 없었다" 라고 적고 있다. 소련측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는 빈의 전투 전황이 잘 보여준다. 스탈린은 4월 13일 오스트리아의 빈을 접수한 직후 진격을 중단하고 어떤 군사적 근거도 없이 계단식 참호를 깊이 파게 했다. "세계사 최대의 배반이 시작되고 있다. 그대들이 자본주의 국가들과 함께 우리에 맞서 계속 싸우기를 원치 않는다면 이리로 넘어오라"라는 내용의 소련측 확성기 선전이 독일 군 진지들 위로 울려 퍼졌다. >그래서 스탈린에게는 독일 수도를 신속히 점령하는 일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896~898p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